베이비시터 하면서 여자애 그림 계속 칭찬한 결과

베이비시터 하면서 여자애 그림 계속 칭찬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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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1 줄리  
[@줄리] 히틀러는 저서 '나의 투쟁'에서 자신이 지독하게 유대인을 혐오하게 된 원인에 대해 어린 시절 오스트리아 린츠의 국립실업학교 레알슐레에서 한 유대 소년을 만났다고 언급한다.

그 소년은 항상 말끔한 차림새였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다. 소년은 가문의 부와 권세, 문화계에서의 영향력을 뽐냈다. 히틀러는 그에게 '자우유트(Saujud.더러운 유대인)'라고 소리쳤다.

소년 히틀러에게 반유대주의의 씨앗을 심은 유대인 소년은 누구였을까?

호주 작가 킴벌리 코니시는 최근 번역ㆍ출간된 저작 '비트겐슈타인과 히틀러(그린비)'에서 20세기 최고의 언어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바로 그 유대인 소년이었다고 말한다.


8 Comments
달콤한브라우니  
나도 타인에게 이런 존재가 되어주고싶다
ㄹㄴㅁ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지만...과잉칭찬의 부작용도 많더라구요ㅠㅠ
말랑말랑  
귀엽 ㅎㅎ
연경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니깐요~~
줄리  
13세 때 오스트리아 빈에서 구두닦이로 시작해 세관 공무원 과장직까지 오른 아돌프 히틀러의 아버지는
아돌프 역시 자신과 같이 공무원이 되기를 희망했지만,
아돌프 히틀러는 그러한 아버지의 희망과는 달리 열렬한 화가 지망생이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당시 웅장한 건물을 스케치를 하는데 매료되어 있었으며
인문계 학교로 진학해 미대에 가길 원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에게 관대했던 어머니 클라라와는 달리
매우 엄했고 폭력적이었던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아돌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린츠의 실업계 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자신의 꿈을 짓밟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반항으로 학업에 매우 불성실해졌다.
참고로 이 때 히틀러의 실업계 학교 시절 같은 반 급우 중 하나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었다.
끝내 화가의 꿈을 접지 못한 그가 하는 일은 그저 린츠의 건물을 스케치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럭키 104 포인트!

오늘하루  
[@줄리]
오호 멋지신 분
줄리  
[@줄리]
히틀러는 저서 '나의 투쟁'에서 자신이 지독하게 유대인을 혐오하게 된 원인에 대해 어린 시절 오스트리아 린츠의 국립실업학교 레알슐레에서 한 유대 소년을 만났다고 언급한다.

그 소년은 항상 말끔한 차림새였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다. 소년은 가문의 부와 권세, 문화계에서의 영향력을 뽐냈다. 히틀러는 그에게 '자우유트(Saujud.더러운 유대인)'라고 소리쳤다.

소년 히틀러에게 반유대주의의 씨앗을 심은 유대인 소년은 누구였을까?

호주 작가 킴벌리 코니시는 최근 번역ㆍ출간된 저작 '비트겐슈타인과 히틀러(그린비)'에서 20세기 최고의 언어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바로 그 유대인 소년이었다고 말한다.
오랑케  
칭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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