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으로 월북한 어느 영관급 장교의 최후

동부전선의 주요 사단 중 하나인
12사단 을지부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최전방 경계와 훈련에 임할 무렵
부대를 뒤집는 사건이 터진다

1978년 6월 13일 12사단에서 근무하던 장교 한명이
북한으로 월북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는 사단 관할 비무장지대 쪽으로
월북 했으며 동행했던 운전병에게
월북을 제의, 거부하자 운전병의 다리에 총상을
입힌 후 단독으로 넘어갔다

- 위쪽 라인 왼쪽에서 두 번째 -
그 장교의 이름은 '이준광'
월북 당시 계급은 소령이었다
사건 발생 후 관할 부대인 12사단은 비상이 걸렸고
상급 부대를 거쳐 국방부로 정보가 전달됐으며

1978년 6월 17일 북한은 방송을 통해
이준광의 월북을 공식 발표했다.
이준광의 월북 사유는 진급에 대한큰 불만으로 알려졌다

- 빨간색 동그라미 유운학 중령 -
이준광 소령은 1977년 월북한 유운학 중령에 이어
두 번째로 계급이 높은 월북 군인이었고
현역 소령이 월북한 이 중대한 사건에 놀란
군은 정보 차단에 들어갔다

문제는 또 있었다
월북한 이준광은 군 정보부대 출신이며
계급도 소령으로 군 생활을 제법 한 사람이었다
월북할 경우 본인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것은 뻔했기 때문이다

77년 월북한 유운학 중령도 보병학교 교관 출신으로
군단에서 인정할 정도로 전술에 밝은 군인이었고
그의 월북으로 경계작전 지침, 암호 체계
전술 교범, 훈련 체계 등을 전면 개편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준광의 소속에 대해선 자료마다 차이가 있다12사단 소속 정보장교로 나오는 곳도 있고정보사령부 소속으로 말하는 곳도 있는데1994년 국방부 발표에선'군 정보부대 소속' 으로 지칭했고북한 자료에 '203 정보대' 로 표기되는 걸로 보아정보 부대에서 12사단으로 파견을 온 것으로 보인다

보통 한국 군인이 월북할 경우 북한은 경력을 인정
1계급 특진시켜 북한군에 편입시키는 관례가 많은데

이준광도 대한민국 육군 소령에서
인민군 중좌가 되었을 확률이 크며
월북 후 북한의 선전과
대남 방송에 나와 방송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잊혀졌던 이준광의 이름은
1994년 8월 3일 뉴스에 등장하게 된다


- 정치범 수용소 명단 -
국제 앰네스티가 북한 승호 수용소에 수감 된
한국 출신 정치범 11명 중 9명의 신원을 확인했는데
뜻밖에 이준광의 이름이 확인된 것이다.
승호 수용소는 당시 가장 악명 높던 수용소 중 하나로1994년 앰네스티 발표 후 폐쇄되었다가2020년대 이후 로동단련대라는 명칭으로 운영 중이다

- 리스트의 이준광 -
그가 정확히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정치범으로
수용소에 들어간 건지는 확실치 않으며
군과 정보 계통에서는 정보원으로서 그의 가치가 없어져
재교육 명분으로 수용소에 넣은 것으로 본다고 한다.

결국 월북해 귀순자로 인정받아도
북한 보위부의 삼엄한 감시와 통제에 놓이며

정보와 이용 가치가 사라지고
단 한번의 실수로도 언제든지 용도폐기 시키는
북한 체제의 냉혹함을 보여주며
그는 94년 승호수용소 폐쇄 후
다른 수용소로 옮겼을 것으로 보이며
이후 소식은 전해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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