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선사시대 전쟁터로 보는 기록의 중요성

3300년 전 독일 원시 부족들이 벌인 전쟁이 고고학 발굴을 통해 알려졌음

당연한 이야기지만, 청동기 시기에도 고위 계층만 청동무기를 쓸수 있었기에 대부분은 석기에 타격당한 유골이 발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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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된 사망자가 1000여명인 점을 미루어 양측 합1만여명 이상의 병력이 동원된 것으로 보임.
유골의 유전 조사를 보면 단순히 그시기 살던 할슈타트 켈트~게르만인들을 넘어 유럽 전역의 소부족들이 양측으로 갈려 연합군을 형성했던것으로 보이는 패권전쟁이었음.
그런데 왜 '선사시대 고고학적 발굴기록'을 이야기하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냐고?



저 기록이 남지 않은 게르만인들의 대전투에서 100여년 안짝이던 동시대에 규모상 비슷했을것으로 추정되는 트로이 전쟁이 있었음.

또 저 전투 십수년 내외로 이집트는 최초로 문자기록이 남은 전투인 카데시 전투를 치르고 있었음.
말 그대로 기록이 남았다면 우리가 어린시절 그리스 로마신화의 오디세우스, 아킬레우스, 헬레네를 달달 외우던 것처럼
저 독일 시골에서 발굴된 이름없는 대전사들의 전설을 즐기고 있었을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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